전신경화증 임상 후기-마지막 희망을 찾아 떠난 여정
집사람의 권유로 찾은 전신경화증 임상 가능한 병원
전신경화증 임상 가능한 서울의 H 병원에 가게 된 계기는 집사람 덕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집사람이 서울에 전신경화증(Scleroderma)을 진료하는 유명한 내과가 있다고 하며
가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김대중 대통령의 주치의였다는 소문도 있을 만큼 명성이 높았습니다.
어렵게 예약을 하고 첫 진료를 받게 되었고, 선생님을 뵙는 순간 ‘진정한 의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첫 진료에서 받은 위로와 용기
집사람은 의사 선생님께 제 증상을 설명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사람 좀 낫게 해 주세요”라고 울먹였고, 선생님은 “괜찮아요, 나을 수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말은 치료제 이상의 힘을 주었고, 제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더 큰 병원으로의 안내
선생님은 전신경화증(Scleroderma)이 여러 과의 협진이 필요한 질환이라며, 더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제자가 있는 H 병원을 추천해 주셨고, 소견서를 써주셔서 H 병원에서 새롭게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H 병원에서의 새로운 시작과 전신경화증 임상 시험 기회
H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담당 선생님께서 전신경화증 임상 시험에 참여해 보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임상에 참여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임상 약제인 레나바숨을 복용하며, 기존 스테로이드제와 면역억제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했지만 새로운 약이 효과가 있길 바라며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사장님의 배려와 감사
기존 회사에서 15년간 같이 근무하다 저보다 몇 개월 일찍 퇴사한 형님이 회사를 차리시고, 저도 따라서 퇴사해 형님 일을 같이 돕겠다고 나온 상태였습니다.
일을 돕겠다고 나왔는데 점점 형님에게 짐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크고 있는 상황이고, 생활비가 나올 곳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사장님이자 형님은 그런 저를 보면서 항상 말했습니다.
“회사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치료받을 일 있으면 네 일정대로 움직여.”
저는 헌장일은 완전히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관절 범위가 줄어들고 근육들이 소실되어 쪼그려 앉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 수도 없고, 손가락 관절의 변형으로 공구도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계속 출근하라 하시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에게 급여라는 명목으로 생활비를 지급해주시며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정말 가족들도 하기 힘든 일을 해주셨습니다.
사무실에서의 외로움과 마지막 희망
사무실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 외로움이 커졌고, 체중도 점점 줄어들며 체력도 바닥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러다 내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집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병원을 옮겨보고 싶다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다른 병원을 향해 마지막 희망을 찾아 떠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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